로타리 클럽
Rotary International District 3650
Rotary Story.
지난 2024년 12월 14일부터 동5일간,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실시한, 국제로타리 3650지구 24-25 베트남 어린이 구순구개열 수술지원 의료봉사 프로젝트 현지봉사를 다녀온 소감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하노이(Hanoi) 에서 만난 작은 천사(天使)들...
글. 총재특별대표 김 무 일 (한성RC)
0. 베트남에서의 아픈 기억.
다사다난했던 갑진년(甲辰年) 한해가 서서히 저문다. 예년에 비해 몹씨도 분망스럽던 갑진년의 마감을 앞두고, 베트남을 다녀왔다. 필자는 과거 베트남戰을 치루던 그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나라의 근세사(近世史)를 직접 온 몸으로 겪은바 있다. 딱 50년전인 1975년 4월 30일 ~, 이날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자유베트남이 월맹 공산군에 의해 함락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던 날이다. 나라를 지켜야 할 아군 공군전폭기가 느닷없이 대통령宮을 폭격하는가 하면, 평소 애국을 제창하던 고급 공직자들이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들의 앞잡이로 돌변했고, 심지어 대통령측근의 비서실장과 고위직 공무원들까지도 월맹 공산군의 고정간첩 푸락치들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다. 필자는 당시 20代 중반의 나이로 주월 청룡부대 최 선봉의 소총소대장으로 참전했었다.
주월 한국군은 1965년 봄부터 1973년 가을까지 약 8년여에 걸쳐, 자유월남공화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 했었는데, 파월 연 병력은 대략 32만 5천명이었다. 그중 전사자 5033명과 고엽제환자를 포함한 부상자 피해는 약 8만5천여명에 이르렀으며,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대략 17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후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이들 전상자들은 빈고(貧苦)와 고엽제 후유증의 병고(病苦)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 치뤘던 값진 희생과 상흔(傷痕) 은 결코 헛되지 않아, 당시 외화(外貨)고갈로 인한 국가부도직전에 월남戰에서 기인(起因)된 경제특수(特需)에 힘 입어, 참전용사와 현대,삼성,대우等 민간기업체에서 國內로 유입된 외화(外貨)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는 조국 근대화를 위한 두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목표달성과 중화학공업 육성, 그리고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한 국내 주요 토목,건축사업 等에 쓰여, 오늘날 세계 경제규모 제 7위인 조국(祖國)번영의 초석(礎石)이 되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예컨데 '65년도 남,북한의 국민 개인소득 편차는 북한 $135에 남한 $65로 남한이 극심한 열세'劣勢'였으나, 월남特需를 계기로 남한 $138 달성으로 역전됐었다.)
자유월남의 패망소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각 언론,방송社마다 이 비극적인 뉴스를 앞 다퉈 보도할때, 우리나라의 언론과 방송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각 일간지의 1面 톱을 장식했던 한장의 사진은 전 세계의 自由民으로 하여금 영원히 잊을수 없는 한 장면으로 남았었는데, 다름아닌 화물 운반용 그물에 실린 한무리의 월남 피난민들이 대형 화물선박에 짐짝 부리듯 던져지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 그물속에는 노약자를 비롯한 남녀노소 피난민들이 한데 뒤 엉킨채, 미쳐 실리지 못하고 남게된 가족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절규하는 장면이었다.
이 그물속에 실려 탈출에 성공한 피난민들은 온 세상 방방곡곡으로 뿔뿔이 흩어져 생명은 건졌겠지만, 이 화물선에 실리지 못했거나 혹은 미처 피난의 기회를 놓친 난민들 대부분은 비극의 Boat Peaple 신세가 되어, 망망대해를 정처없이 떠 돌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곤 했는데, 이들은 과거 자유베트남에서 사회적 지도자였거나 또는 상류층 계급의 지식인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숙청목표 제 1호는 모두 고급인력을 포함한 군인, 경찰관 출신等 고위 공직자들과 부유층,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었고, 이때 처참하게 학살되거나 조국을 등진 상류층 지식인들과 그 가족들은 당시 월남국민 전체인구의 약 1/4에 해당는 2천만명으로 추산된다. 한 나라가 亡하는 슬픔은 얼마나 처참할까 ?.
0. 자유베트남 패망 후.
보름쯤 지났을까 ?. 5월의 훈풍이 봄바람을 타던 어느 봄날 오후,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S신문사 박정도기자로 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필자와 해병대 임관동기생으로 주월 청룡부대 수색중대에서 함께 死線을 넘던 戰友였다. "월남에서 '미쓰 탄'이 왔어 !.", "갑자기 무슨소리야 ~, 낮술했어 ?.", "우리부대 앞에서 레이션과 쌀국수를 팔던 '미스탄'을 만났단 말이야.", "뭐라고 ?, 그거 정말이야 ?.", 박기자의 숨 넘어가는 소리에 필자는 마치 무슨 드라마 대사를 듣는 느낌이었다. 월남에서 '미쓰 탄'이 오다니 ..?. 한동안 도하 신문 1면을 장식하던 화물운반용 그물에 갇힌 피난민들의 절규하던 모습이 떠 올랐다. 정신을 가다듬고 들려온 박정도기자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동료기자들과 점심을 마치고 귀사하던 중, 광화문 네거리 건널목에서 웬 낮선 젊은여자에게 소매끝을 잡혔다 했다. 그리고 반갑다는듯 뭐라뭐라 말을 붙이며 따라오는데 통 알아 들을수가 없었단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옷차림도 범상치 않은데다가 올망졸망한 서,너명 아이들까지 따라붙어, 동료기자들은 물론 지나던 행인들 조차도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었다. 혹시 실성한 여자가 사람을 잘못봤나 싶어 피하려 하는데, 계속 '쭝위 박 !. 쭝위 박 !.' 하며 따라오는게 아닌가 ?. '쭝위 박 ?.' 참 오랫만에 듣는 호칭이었다. '아 ~ ? 글면 월남사람인가 ?.' 한국에서는 통상 '박 중위, 김 중위'라고 부르는데 월남에서는 유독 '쭝위 박, 쭝위 킴'으로 부르던 호칭이 생각났던 것이다. (美軍 계급 호칭 캪틴 박, 컢틴 킴과 동일한 호칭법이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전투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귀국한지 얼추 4,5년정도 흘러, 당시 18,9세쯤이었던 앳띤 소녀가 이제 20代 중반의 아기엄마가 되어 나타났으니 몰라볼만도 했겠다. 신문사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이들을 인근 제과점으로 데려가 '미쓰 탄'임을 확인했는데, 박중위의 남 달리 큰 키가 '미스 탄'의 눈에 쉽게 띄었다고 했다. 기적같은 만남이었다.
당일 퇴근 무렵, 함께 참전했던 서정호중위(삼양식품 회장 역임)까지 불러내 '미스 탄'의 눈물겨운 사연을 함께 들었다. '미스 탄'과 언니 '미스 푸엉'은 두어살 차이의 자매로 부대앞 작은 국수집을 차려, 간혹 치열한 작전이 끝날때면 잠시 들려 목을 추기곤 했었는데, 우리가 귀국무렵 인근의 한국인 기술자와 각각 장래를 약속한 자매가 한국아이를 둘씩 낳았다 했다. 얼마후 아이들의 아빠들은 임기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들을 데려오려 이민수속을 밟던중, 전황(戰況)이 악화되 두 자매는 아이들 넷을 데리고 급히 피난길에 올라야만 했다. 공산군이 남하(南下)하면서 한국아이들과 엄마를 무참히 살해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것이다. 자매는 오직 한국아이들을 살리려는 일념(一念)으로, 베트남 중부도시 '호이안'을 출발해, 한달여를 쫄쫄 굶어가며 걷고 또 걸어 천신만고끝에 首都 사이공에 도착했다. 이어 한국대사관을 찿아 한국행 피난선 승선권을 얻으려 했으나, 한정된 탑승인원으로 이들과의 아귀다툼끝에 어렵사리 구한 탈출 티켓은 달랑 한장뿐 이었단다. 부득이 동생 '미스 탄'이 언니의 아이들까지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는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탈출후 한국에 도착해, 당시 보건사회부 주선으로 미국령(領) 괌(Guam)에 취업중인 애 아빠와 합류코져 미국 비자를 신청하려고 광화문을 지나다가 우연히 박중위와 마주쳤던 것이다. 우리 소대장 3명은 이들이 무사히 괌으로 떠날때까지 물심양면으로 정성껒 돌봐주었고, 半세기전 이들의 행복을 빌었던 때를 돌이켜 떠 올리며, 필자는 금번 3650지구의 뜻깊은 베트남 의료봉사의 대열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0. '하노이'의 작은 천사(天使)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마도 그때 그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여 지금쯤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또 결혼해 아이를 낳아, 또 그 또래의 아이들이 태어났을때 쯤인 이때, 국제로타리 3650지구 해외 봉사계획인 '베트남어린이 구순구개열 수술지원 프로젝트 현지봉사'를 위해 베트남의 수도(首都) 하노이(Hanoi)에 도착한것은 2024년 12월 14일 밤이었다. 구순구개열증을 앓는 어린이는 겉보기에 코밑 인중이 갈라진채 태어난 불쌍한 아이들로, 통상 우리는 이를 언챙이라고 부른다. 여지껒 이 증상의 정확한 의학적 원인은 규명된바 없지만, 주로 저 개발 도상국가에서의 오염된 식수와 비위생적 음식물, 그리고 영양실조와 無知한 건강의식에서 기인된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重賢 소효근총재와 국제봉사위원회 이희봉위원장은 이번행사를 위해 100명분 어린이의 치료를 목표로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지구內 각 클럽과 회원들의 정성어린 성금 2500만원과 地區 보조금 1700만원, 도합 4,200만원(미화 3만弗.) 모금을 달성, 이는 '超我의 봉사정신'과 '적극적 참여'의 힘을 맘껒 발휘해 준, 국제로타리 3650지구의 진면목임을 여실히 나타내준 쾌거(快擧)였음에 감흡할 뿐이다.
출국 얼마전, 月例 조찬회에서 樹下 박수부총재를 만나,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베트남 의료봉사 함께 가십시다." 에 흔쾌히 합류할것을 약속했다. 지난해 베트남 호치민(Hochimin) 의료 지원행사에서 보여준 그의 우호적이고 소박한 성품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던 차였다. 흉하게 이즈러진 언챙이 어린이들의 아픈 마음과 이들을 낳은 어린 엄마들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했을까의 고충을 樹下총재는 누누히 가슴아파 했었다. 봉사의 날이 밝았다. OSV(Operation Smile Vietnam.) 임,직원들의 안내로 병원에 도착하니, 한무리의 어린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병원 강당에서 우리一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의외로 밝은 표정들이었다. 다름아닌 지난해 우리 로타리의 지원으로 완쾌된 아이들과 그 엄마들이었는데, 그들의 얼굴엔 한결같이 감사해 하는 善한 표정들로 말없이 우리를 환영했다. 한동선,김명혜 특별대표의 눈가에 살며시 물기가 서린다. 아마도 저들과 똑같은 母情의 발로였으리라....
지정된 병원은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깨끗했으며, 바삐 움직이는 의료진들과 의료장비도 손색이 없을만큼 수준급이여서 일단 마음이 놓였으나, 그리 넓지않은 대기실에는 한눈에 먼곳에서 달려온듯한 언챙이 어린이들과 젊은 엄마,아빠들로 붐비고 있어, 강당에서의 완쾌된 가족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분위기에 우리들의 마음이 잠시 숙연해 졌다. 하루,이틀은 보통이고 몇낮몇밤을 지새워 멀리서 도착했다는 이들 앳띤 애 엄마 아빠는 영락없는 '미스 탄', '미스 푸엉'의 모습들이었다. 어찌알고 그토록 먼길을 왔냐는 김재환위원장의 물음에, 소문에 소문을 전해듣고 산간벽지의 보건소를 통해 찿아 왔노라는 답변이다. 이윽고 우리들의 의료활동은 시작됐다. 진료소 입구에 책상과 걸상을 배치하고 선물꾸러미를 풀었다. 선물은 주로 아이들이 좋아할 장난감과 학용품, 그림책등으로 몇개의 대형상자 운반에 김정호국장과 정한범dr의 노고가 만만칠 않았을 것이다. 김학자, 이현성위원장의 산타할머니, 할아버지변장은 불안에 겁먹던 아이들에게 잠깐의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마련해 주었다. 첫날은 이 아이들 상태를 미리 점검하는 일정으로 바쁜 하루가 지났다.
0. 수술실에서...
베트남 이틀째를 맞는다. 밤새 어제 만났던 불쌍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다. 수술전 처리과정은 매우 엄격했다. 수술실에 입실하기 전, 혹시 아이들에게 감염될 염려를 대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환복(換服)한 우리 一行의 모습들은 영락없는 전문의 모습들이었다. 수술전 전신마취는 했겠지만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천진스러운 얼굴모습은 모두 편안한 天使들의 표정이다. 얼굴과 온몸을 온동 방균복으로 감싼 의료진과 간호사들의 손놀림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함에 새삼 생명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순간들이다. 천정에 매어달린 수술조명등과 달가락대는 금속성에 우리들 참관자들 마져도 이마에 땀방울이 배일정도다. 이토록 어려운 시술을 시도하는 의료진이나 어린생명들은 물론, 수술실밖 대기실에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젊은 엄마,아빠 모두에게 主님의 끝없는 은총이 가득하심을 기도하였던 하루를 정순훈위원장이 헌신적으로 도왔다. 아마도 오랫동안 몽골에서 익힌 봉사활동이 몸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수술실과 대기실 안팎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보호자 가족들 사이로 삐에로복장을 한 한 청년이 고무풍선으로 묘기를 부린다. 아마 수술을 앞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잠시나마 잡념을 잊게 하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이 가족들을 정성껒 보살피는 학생들이 눈에 띄어 '알바' 냐고 물어보니, 기특하게도 얼마전 로타리 지원으로 언챙이 수술을 받았던 자원봉사자들이라 했다. 오승훈, 윤구홍대표가 이들의 善行을 칭찬하며 지니고있던 필기도구와 간식꾸러미를 몽땅 건네준다. 이 간식팩은 지루한 여정동안 틈틈히 들라고 소효근총재 사모님께서 정성껒 준비해 전해준 건강식품이었다. 땀방울 솟던 의료진들이나, 어린 天使들이나,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들이나 그리고 완쾌의 고마움을 자원해서 봉사하는 청년들이나 모두모두 진정한 '超我의 봉사와 헌신'의 모습에 감동가득한 하루가 또 지났다.
3650지구 국제봉사위원회는 지난 13년 동안 지구 보조금사업으로 구순구개열 또는 기타 치아와 안면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베트남, 중국, 필리핀 그리고 네팔지역等 어린이와 청소년 2,700명에게 미국에 본부를 두고있는 세계 OSI 협조아래 미화 $760,000을 지원하여 무료수술을 실시한바 있다. 아울러 지난 2011부터 2019년 까지 합계 9억2천만원($700,000 / 약 2,600명.)을 모금하여 수술을 지원했으며, 지난해는 7,980만원($60,000 / 약 200명.)을 모금, 수술 지원한바 있고, 금년 12월에 실시한 봉사는 12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하노이에 소재한 E Hospital 에서 실시 했으며, 지원 목표 100명중 5일간 우리 一行 참관기간중에 49명의 아이들에게 수술을 시술했다. 남은 어린이들도 OSI Vietnam 과 협력하여 100명 어린이의 수술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어린환자들의 회복기간은 거의 1주일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병원과 OSV 에서는 회복되는 기간까지도 우리와 함께했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우리들 一行의 일정이 허락질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기로 했다. 그 1주일동안 먼곳에서 온 가족들의 숙식이 궁금하다는 오상희, 박성근 사무부총장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듯, 병원측에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시설은 어두컴컴한 합숙소였다. 비록 누추하긴 했지만, 병원주변에 마땅한 숙식장소가 없음을 볼때, 이나마 편의를 준비해 주는 병원의 배려가 한편 고맙기도 하다는 보호자가족들의 답변이었다. 출국전 Operation Smile 사무실에 걸려있는 월간계획표에 국제봉사단체의 후원현황이 적혀져 있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줄어들어 아쉽다는 설명이다. 이달은 불과 대,여섯件으로 모두 2,30명線을 넘지않는 계시판에, "Rotary 3650 Seoul Korea 100." 이란 숫자가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끝으로 소개할 회원이 있다. 기간중 내내 어린환자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보살피는가 하면, 이들 가족들에게 까지 밝은 미소로 친절을 베풀면서 每事에 열정 가득함을 보여주던 Sun Kim 대표 ~. 장차 3650의 도약을 위해 더 큰 몫을 기대해도 되겠다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 있었는데, 귀국 나흘후 반가운 朗報가 날라들었다. 바로 김선(金善)대표의 '27-28년도 총재 피 지명 소식이다. 금번 Hanoi 작은 천사 수술지원 현지봉사에 동참했던 모든이들과 함께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그리고 지금쯤 완쾌의 기쁨을 가족들과 함께 나눌, 작은 天使들의 밝은 미소를 떠 올리며 소감문의 막을 내린다 (完).
"믿음의 기도는 病든 자를 구원하리니, 主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워 주시리라..!." 야고보書, 5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