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3650 지구소개

Rotary International District 3650

한국로타리, 3650지구 100년 이야기 (7)

 

한국로타리 365 단일지구가 19개 지구로 확대

1995년 존9 시대 거쳐 2018년 존11&12로 성장

김영소 전총재, 한국인 최초 국제로타리 이사로

 

글. 신흥래/지구사료위원장, 서울새신라RC, 소설가

 

 

1961년,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우리나라를 단일 지구(地區, Distrit)로 승인했다. 이는 우리나라에 최초의 로타리클럽이 탄생한 이래 34년 만에, 또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국제로타리에서 탈퇴했다가 해방 후 1949년 재가입한 이래 12년 만에 독립 지구로 승격한 것이었다.

 

단일지구로 승격한 우리나라의 로타리 규모는 1960년 10월 말 기준, 전국 12개 클럽에 회원 682명이었다. 375(현 3650)지구가 출범할 당시 국제로타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조셉 A. 애비 회장이 재임 중이었는데 전 세계 123개국, 11,021개 클럽에 51만3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로타리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1969년 7월 78개 클럽, 3,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375지구가 376지구로 분구할 여건이 되었다. 이에 376지구가 경상남⸱북도와 부산, 제주도의 31개 클럽, 1,114명으로 분구하여 발족하였다.

 

2개 지구로 분구할 즈음 조동수(趙東秀, 서울RC) 375지구 총재는 1968-69 임기 중 전국적으로 24개 클럽을 창립시켰고, 그가 추진 중이던 7개 클럽은 이듬해에 창립된 바 있다.

 

 

단일지구가 55년 만에 19개 지구로 확대

 

이후 꾸준히 발전해온 한국로타리는 1995년 12개 지구, 회원 4만 명 시대가 됨으로써 전 세계 34개 존(Zone) 가운데 존9으로 독자적인 단독 존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로타리에서는 1991년 7월 1일부로 지구별 고유번호의 맨 뒤에 ‘0’를 넣어 네자릿수 번호로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1977년, 전 세계적으로 지구 번호가 한 차례 변경되었고, 그것이 네자리숫자로 바뀜으로써 오늘날 사용하는 지구 번호가 정착되었다. 즉, 국제로타리 375지구였던 우리나라는 365지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1년부터 365지구는 3650지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지구 명칭에 따른 지구 변천사를 되짚어보도록 한다.

 

1961년 375지구로 탄생한 3650지구가 확대되자 1969년 부산⸱경남북⸱제주도 지역의 3660(옛 377→ 366)지구를 분리했고, 1971년 광주⸱전남북 지역의 3670(옛 377→ 367)지구가 독립 지구로 출범하였다.

 

후에 옛 366지구는 부산⸱제주의 3660지구와 경남의 3720지구로 나뉘었으며, 3660지구는 2014년 부산의 3661지구 및 제주의 3662지구로 다시 분구되었다. 3720지구는 경남동부의 3720과 경남서부의 3590지구가 분구되었다가 2016년 3720지구는 울산⸱양산⸱밀양의 3721지구로, 창원⸱김해⸱함안⸱창녕의 3722지구로 나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366지구에서 나뉜 경북의 3700(옛 370)지구는 대구의 3700, 경북의 3630지구로 분구되었다.

 

전남⸱북 지역은 367(옛 377)지구에서 전북 3670(옛 367)지구와 전남 3710(옛 371)지구로 분리되었고, 3710지구는 광주 지역의 3710지구와 전남 지역의 3610지구가 되어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옛 365지구에 소속되었던 대전⸱충남북 지역은 368지구가 되었다가 충남의 3680지구와 충북의 3740지구가 되었고, 3680지구는 충남의 3620지구와 대전⸱세종⸱충남동-남 지역의 3680지구로 나뉘었다.

 

또 서울⸱경기⸱강원 지역을 아우르고 있던 3650(옛 365)지구는 경기 지역의 3690(옛 369)와 3750지구로 나뉘고, 강원 지역의 3730(옛 373)지구로 독립된 지구로 발전하였으며, 서울의 3650지구는 서울 북부의 3650과 강남지역의 3640지구로 분구하였다.

 

경기 지역의 3690지구는 경기 이북지역의 3690(옛 369)지구와 경기 이남지역의 3750(옛 375)지구로 분리된 다음, 또다시 현재의 성남⸱경기동부의 3600지구, 인천⸱경기북부의 3690지구, 수원⸱경기서부의 3750지구로 나뉘어 이어져오고 있다.

 

이와 같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한국 로타리는 1995년 존9으로 승격하였고, 2009년 존9과 존10A로 확대된 후 2018년에는 오늘의 존11과 존12 2개 존 시대를 맞이하였다.

 

<현재 존 11, 존 12 구역과 소속 지구 현황>

 

 

1970년대 한국로타리 회원수 증가 등 급성장

 

 

우리나라가 365(옛 375), 366(376), 367(377) 등 3개 지구로 운영되던 1970년대 초중반, 한국 로타리에서는 여러 방면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두고 있었다.

 

특히 회원수가 증가한 점이 눈에 띄었다. 1968년 7월부터 1971년 6월까지 3년 동안 신입회원이 2,403명이 늘어났는데, 이는 1971년 6월 말 기준으로 총회원수 4,275명의 56.2%에 달하는 급성장이었다. 그리고 1976년 4월에는 162개 클럽에 회원수가 5,568명으로 늘어나 회원수 5천 명 시대를 열게 되었다.

 

한편 1971년 10월 9~10일 양일간 서울 타워호텔(현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365 및 366지구 합동 지구대회에서 365지구 10년차 지구대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한국로타리 장학문화재단 설립 건이 재확정되었고 11월 25일 박동규(朴東奎, 한양RC) 전 총재를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여 11월 25일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인터랙트 및 로타랙트클럽이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다. 인터랙트클럽은 1962년 미국 플로리다의 멜버른 고등학교에서 처음 창립되었다. 이후 1974년 빌 로빈스 RI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급속도로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인터랙트클럽이 큰 호응을 얻어 빠르게 성장해 나가자 인터랙터와 로타리안 사이의 연결고리가 될 로타랙트클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196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 로타랙트클럽이 창립되었다. 로타랙트는 청소년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공동의 이상을 지닌 청년들간의 교류와 우정을 추구하도록 하여 아직 로타리클럽에 가입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18~30세의 젊은이들을 아우르는 봉사단체로 고안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11월 26일 대구로타리클럽 후원으로 대구인터랙트클럽이 처음 조직되었다. 아울러 동부산로타리클럽이 후원하는 부산대 로타랙트클럽이 1971년 10월 20일 처음 창립되었다. 이듬해 9월 26일 남서울로타리클럽 주관으로 375지구 로타랙트 지구대회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는 8개 로타랙트클럽, 1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1975년 한국인 최초 김영소 RI이사 배출

 

1973년에는 한국로타리에서 처음으로 지역별 지역연수회를 가졌다. 375지구는 7개 지역별로 지역연수회를 실시했고, 376과 377지구는 각자 1회씩 지역연수회를 가졌다.

 

1975년에는 국제로타리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3개 지구의 결의로 기념우표(10원) 200만 매를 발행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로타리의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국제로타리 70주년을 기념해 1975년 발행한 기념우표.>

 

또한 1971년 9월 24~25일 일본 352 및 353지구 지구대회에 김영소 전 총재가 RI회장대리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이는 한국로타리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는 한국로타리가 내실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국제적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양적, 질적인 발전에 이어 한국로타리에 낭보가 있었다. 부산로타리클럽 소속의 김영소(金永韶) 전 총재가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로타리 이사에 선임되어 1975-77년 2년간 활약했다. 김영소 RI이사는 1947년 부산의 춘해외과의원을 개원한 의사이자 춘해학원 설립자로서 춘해보건대를 세운 교육가였다.

(다음호에 계속)

 

<전국 3개 지구가 이화여대 강당에서 개최한 한국로타리 50주년 기념 지구대회>

 

<50주년 지구대회장에 창립 연도별로 전시된 클럽 배너들>